현대 디지털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 불립니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모든 전자기기와 첨단 산업에 필수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1947년 벨 연구소의 트랜지스터 발명부터 현재의 3나노 공정 경쟁까지, 반도체 산업은 기술 혁신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본 글에서는 반도체 역사의 출발점인 트랜지스터부터 시작해, 4차 산업혁명의 심장이 된 시스템반도체, 그리고 삼성전자와 TSMC가 벌이는 치열한 나노공정 경쟁까지 살펴보겠습니다.

트랜지스터가 바꾼 전자공학의 역사
반도체의 시초는 1947년 12월 23일 미국 벨 연구소에서 탄생한 트랜지스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모든 전자장비에 사용되었던 진공관은 전력소모가 크고 유지가 어려웠다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벨 연구소의 윌리엄 쇼클리 연구진이 개발한 트랜지스터는 빛을 쪼이거나 전자를 주입하면 전도가 달라지는 특성을 활용하여 전류나 전압의 흐름을 조절하는 스위치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발명은 전자공학 역사의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으며, 오늘날 산업 발전의 시초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트랜지스터의 등장은 단순히 진공관을 대체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소형화와 저전력화가 가능해지면서 전자기기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컴퓨터와 통신기기의 발전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1965년 4월 인텔의 공동 창업자 고든 무어는 일렉트로닉스라는 잡지와 인터뷰에서 "반도체의 칩에 들어갈 수 있는 트랜지스터의 수는 2년마다 2배씩 늘어날 것이다"고 예측했습니다. 이후 이 말은 무어의 법칙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전 세계 반도체 업체는 약 50년간 이 법칙에 따라 반도체를 개발해 왔습니다. 그 결과 컴퓨터, 스마트폰 등 최첨단 기기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조 비용 증가와 추가 기술 발전의 어려움 등으로 개발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습니다.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물리학적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산업 전체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트랜지스터를 더 작게 만드는 기존 방식 대신, 칩렛 구조나 첨단 패키징 같은 새로운 접근법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스템반도체가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반도체 산업은 보통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나뉩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고 기억하는 용도로 활용되는 제품으로, 대표적인 것이 D램과 낸드플래시입니다. D램은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사라지며,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지더라도 데이터가 보존되지만 속도가 느립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국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1,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가 아닌 모든 제품을 포괄하며, 그중에서도 시스템반도체는 소품종 대량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제품으로 종류만 해도 수천여 개가 넘습니다. 시스템반도체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인 CPU, 스마트폰에서 CPU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인 AP, 자동차에 들어가 다양한 기능을 하는 차량용 반도체 등 주로 '두뇌' 역할에 해당합니다. 즉, 데이터 연산, 제어 등 정보 처리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4차 산업 생산품의 핵심 부품에는 시스템반도체가 반드시 들어갑니다. 이는 시스템반도체가 단순한 전자부품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기반이자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점을 의미합니다. 시스템반도체는 우수한 설계 인력과 기술, 고가의 설계와 검증, 반도체 설계자산인 IP 등 기술 인프라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시스템반도체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50~60%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며, 경기변동에 따른 영향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 제품을 생산하는 주문형 방식으로 수요와 공급 불일치에 따른 급격한 시황 변화가 없어 특정 산업의 호·불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안정적 시장구조를 특징으로 합니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는 생산 후 판매방식으로 수요와 공급 불일치 때 급격한 가격 변동이 발생합니다.
시스템반도체 중 팹리스 시장은 미국 기업이 주도하고 있고, 중국이 내수를 기반으로 추격 중인 양상입니다. 퀄컴, 엔비디아, AMD 등 미국기업이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으며, 미디어텍, 하이실리콘 등 중국계 기업은 거대한 내수시장과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 아래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파운드리는 대만 TSMC가 약 50%의 시장 점유율로 독보적 1위이며, 삼성전자가 2위로 추격하고 있습니다.
나노공정 경쟁에서 펼쳐지는 삼성전자와 TSMC의 기술 전쟁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나노' 경쟁이 치열합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평택캠퍼스 방문 때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 공정이 적용된 최첨단 웨이퍼를 선보였습니다. 시장에서는 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 TSMC에 맞설 삼성의 '비밀 병기'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GAA 기반 3나노 1세대 반도체를 5~6월 중 양산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반도체 기술 발전은 스위치 역할을 하는 트랜지스터를 더 작게, 더 많이, 전력 소모를 줄이며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현재 반도체 공정에는 입체구조 공정인 핀펫 기술을 사용하는데, 평판 트랜지스터보다는 효율이 높지만 초미세공정으로 진화하면서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 전류가 흐르는 채널을 4면으로 둘러싸는 GAA 구조입니다. 삼성은 20년 이상 GAA에 투자해왔습니다.
GAA 구조에서는 전류의 흐름을 보다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어 전력 효율이 개선됩니다. 핀펫 공정과 호환성이 높아 기존 설비·기술을 그대로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3나노 반도체는 주로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등 고성능과 저전력을 요구하는 차세대 반도체에 활용될 전망입니다.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습니다.
매번 기술 공정에서 TSMC를 쫓아가던 삼성이 이번에는 신기술로 제품 양산에 들어가는 의미도 있습니다. TSMC는 그동안 3나노까지 핀펫 기술을 적용한 뒤 2나노부터 GAA를 적용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TSMC가 올 하반기 핀펫 기반의 3나노 반도체를 선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선도 경쟁이 아니라 전략적 차별화의 문제입니다. 삼성전자의 GAA 선도 전략과 TSMC의 안정적 공정 로드맵은 각기 다른 리스크와 기회를 안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 주요국은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기초연구와 기술 보호 등으로 민간 기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대만은 파운드리 글로벌 1위 TSMC를 바탕으로 팹리스와 파운드리의 유기적 협력을 통한 글로벌 팹리스 업체 육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TSMC는 삼성전자의 거센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매년 50조원을 투자하며 격차를 벌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기업을 중심으로 조 단위 시설 투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 1분기에만 삼성전자는 6조 6000억원, SK하이닉스는 4조 6000억원을 시설·설비 투자에 집행했습니다. 삼성전자는 향후 5년간 45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초격차' 위상을 강화하고 시스템반도체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을 주도한다는 계획입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2030년까지 메모리 반도체뿐만 아니라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1위를 하겠다는 목표를 표방하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산업은 이제 단순 기술 경쟁을 넘어 지정학적 전략 산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트랜지스터라는 작은 스위치가 만들어낸 혁명은 시스템반도체라는 두뇌 산업으로 진화했고, 나노공정이라는 극한의 기술 경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무어의 법칙이 둔화되고 있지만, 반도체 기업들은 GAA 같은 구조적 혁신과 대규모 투자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라는 표현은 범용성과 필수성, 그리고 공급망 영향력을 아우르는 정확한 비유입니다. 앞으로도 반도체 기술 경쟁은 국가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출처]
반도체 톺아보기 - 반도체는 왜 '산업의 쌀'일까 / 오피니언뉴스: https://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