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과 2022년, 현대차 생산 라인이 멈춘 사건은 단순한 일시적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차량용 반도체 대란으로 촉발된 이 위기는 외산 의존도 95%라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고,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국내 산업계가 본격적인 자립 전략을 선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의 필요성과 현실적 과제, 그리고 현대모비스가 주도하는 생태계 구축 전략의 의미와 한계를 심층 분석합니다.

공급망 자립의 절박함과 현실적 배경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은 29일 경기 성남시 한 호텔에서 열린 '제1회 현대모비스 차량용 반도체 포럼(Auto Semicon Korea)'에서 "2021, 2022년 차량용 반도체 대란에 현대차 생산 라인이 멈췄다"며 "차량용 반도체 자립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 계기였다"고 밝혔습니다. 이 발언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 글로벌 완성차 업계를 덮친 수급난이 얼마나 심각한 경영 리스크였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입니다.
당시 이 사장은 현대차·기아 구매본부장으로 일하며 차량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을 누빈 공급망 전문가였습니다. 그가 직접 목격한 납기 지연과 생산 라인 중단은 이론상의 리스크가 아닌 실제 현실이었고, 이는 차량용 반도체를 단순한 부품이 아닌 "모빌리티 성능을 좌우하는 두뇌"로 재정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급망 자립이라는 목표가 실현 가능하려면, 국산화가 단순히 '외산 의존도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국산 반도체 역시 원재료, 장비, EDA 툴 등에서 해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완전한 자립이 아닌 '의존 구조의 다변화'에 가깝다는 현실적 인식이 필요합니다. 외산 비중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핵심 소재와 장비에 대한 접근성까지 확보해야 진정한 의미의 공급망 안정성이 확보될 수 있습니다.
또한 갈수록 거세지는 무역 장벽 앞에서 국산화는 단순한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이 되고 있습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반도체 수출 규제, 공급망 재편 등 지정학적 변화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며, 이는 국내 생태계 구축의 절박함을 더욱 강화하는 요인입니다.
현대모비스 전략의 핵심과 생태계 결집
이날 포럼에는 현대차·기아 등 완성차 기업과 삼성전자, LX세미콘, SK키파운드리, DB하이텍 등 23개 반도체 전문 기업 임원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팹리스(설계)부터 파운드리, 디자인, 패키징에 걸쳐 반도체 산업 노하우를 가진 국내 기업들이 총출동한 것입니다. 이는 민간 기업들이 차량용 반도체 산업에 대한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한 첫 사례로, 개별 기업 차원이 아닌 산업 구조 차원의 대응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큽니다.
현대모비스는 이 기업들과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 키우기에 힘을 싣겠다고 밝혔습니다.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독자적 설계 및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이른바 '국산화' 확대를 다짐한 것입니다. 현재 현대모비스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과 차량용 반도체 10종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이르면 2026년 양산에 돌입합니다. 반도체 기업들과 협력 속도를 높여 2030년까지 국산화율을 1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국산화율 10%'라는 목표 수치의 의미는 다소 모호합니다. 이 수치가 물량 기준인지, 금액 기준인지, 아니면 핵심 제어 반도체 기준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가 범용 반도체 10개를 국산화하는 것과 고가 핵심 제어 반도체 1개를 국산화하는 것은 전략적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목표 자체보다도 측정 기준이 불분명해 정책과 전략 평가가 어렵다는 점은 향후 보완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2030년 약 200조 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이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겠다는 포부가 제시되지만, 이 전망의 근거가 기사 안에서 검증되지 않습니다. 어떤 기관의 추정치인지, 어떤 가정(전기차 침투율, 자율주행 단계 등)을 전제로 한 수치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수치가 강조된 만큼 출처가 함께 제시됐으면 신뢰도가 더 높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모비스가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완성차 기업이 단순히 반도체를 '구매'하는 수준을 넘어, 설계부터 양산까지 전 과정에 관여하겠다는 의지는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기술 장벽과 국산화의 현실적 난이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신규 기업들이 진입하기에는 장벽이 높습니다. 혹독한 주행 환경을 견딜 수 있는 내구성과 안전 기준 등이 확보돼야 해 품질 인증 절차가 일반 가전이나 모바일 반도체와 비교하면 엄격한 편입니다. 다품종 소량 생산 구조라 수익성 면에서도 재미를 보지 못한다는 인식 탓에 국내 반도체 산업은 가전과 모바일 중심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러한 기술 난이도와 시간 리스크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차량용 반도체는 내구성과 안전 인증 장벽이 높다고 언급되지만, 실제로 인증에 소요되는 평균 기간, 실패 확률, 양산 전환까지의 리스크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차량용 반도체는 AEC-Q100 같은 국제 표준 인증을 거쳐야 하며, 이 과정에서 최소 2~3년의 검증 기간이 소요됩니다. 또한 완성차 업체의 실차 테스트까지 통과해야 하므로, 설계부터 양산까지 5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흔합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100대 차량용 반도체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린 국내 기업은 5개뿐입니다. 세계적 반도체·자동차 강국이지만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상황입니다. 외산 의존도 약 95%라는 수치는 왜 '국산화'가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수치를 뒤집기 위해서는 단순히 의지와 투자만으로는 부족하며, 장기간의 기술 축적과 시장 검증이 필요합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대세인 시대에 접어들며 차량용 반도체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습니다. 파워 반도체, MCU(마이크로컨트롤러), 센서 반도체 등 핵심 부품의 성능이 차량의 주행 거리, 충전 속도, 안전성을 직접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차량용 반도체를 단순 부품이 아닌 핵심 경쟁 자산으로 규정한 관점이 현재 산업 흐름과 부합함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산화의 난이도는 예상보다 훨씬 높습니다. 기술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검증되지 않은 신규 공급사의 반도체를 채택할 가능성은 낮으며, 초기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현대차·기아 같은 국내 완성차 업체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현대모비스가 생태계 조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배경이기도 합니다.
결론: 선언에서 실행으로, 남은 과제들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 전략은 문제 인식과 방향성 면에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실제 위기 경험에 기반한 절박함, 국내 생태계의 결집, 그리고 전기차·자율주행 시대에 맞는 전략적 재정의는 모두 타당합니다. 하지만 목표 수치의 정의, 기술적 난이도에 대한 현실적 설명, 국산화의 구조적 한계 인식은 여전히 보완이 필요합니다.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분명하지만, "얼마나 어려운가"와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함께 이루어질 때, 이 전략은 선언을 넘어 실행 가능한 로드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한국일보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092916440004619